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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_250f15 2017.06.06 조회 수 93 추천 수 0

 

지하철역 3번 출구 앞에서, 널 처음으로 봤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네 짙은 눈썹이었어.

수줍게 서로 존댓말로 인사를 건넨 뒤, 긴장했는지 뻣뻣한 자세로 걸어가는 널 보는데 정말 귀여웠어.

 

아무도 없는 고깃집에 들어가서 긴장을 풀자며 간단하게 시작한 소주 한 잔, 근데 그 반병도 채 안 되는 술에 취해 불러주는 노래 듣고 싶다고 하는 모습이 또 귀여웠어.

아직 찬바람이 부는 3월이었지만, 남들보다 일찍, 내 마음속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더라.

 

너와 만나는 시간동안, 난 너와 함께하는 미래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어.

삼청동길 구석, 아주 먼 옛날 가본 한식 레스토랑에 너와 함께 가고 싶었고, 박물관과 전시회에서 신기하는 네 옆모습을 보고 싶었어. 너를 위해선 달도 따다줄 수 있다고 말하고, 이과생답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네 타박도 듣고 싶었어.

 

하필 내 마음에 핀 꽃이 벚꽃 이어서였을까, 너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났지만, 순식간에 떨어져 내렸어.

 

다른 사람을 만나보려도 해보고, 운동을 하며, 일을 하며 잊어보려고 노력했어. 공부에 더 집중도 해보고, 술에 취해도 봤어.

 

그런데 말야, 커피숍에 가면 언제나 네가 먹던 카페모카를 나도 모르게 먹고 있고, 운동을 하면 할수록 같이 하자던 네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고, 공부나 일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네가, 정말 매 순간마다 생각났어.

 

너에게 난 벚꽃이었지만, 나에게 넌 벚나무였나봐.

꽃이 지고 사라졌는데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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