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색깔 좋아하세요? 노란색? 빨간색? 아니면 차콜, 네이비, 탠저린? 제가 좋아하는 색은요, 왜 그 노란색인데 약간 푸르스름한 색 있죠? 레몬 색이라고 불리는 색보다는 조금 더 초록빛이 도는 색. 그 색깔이 바로 제가 좋아하는 색이에요. 살짝 덜 익은 레몬 색이라고나 할까요?
얼마 전에 대나무숲에 어느 3학년 학우분이 쓰신 고민 글을 봤어요.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드신다고…. 남 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자기는 정말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을 왔다며, “졸업하면 뭐 할거야?”라는 질문에 막막해지곤 한대요. 솔직히 고3 때 대학 졸업 후의 구체적인 진로계획을 말할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있겠어요? ‘내가 이걸 좋아하니까, 이 전공을 선택해서 공부하면 이 쪽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방향만 잡아놓죠 뭐. 진로라고 해 봤자 대충 날려 그린 스케치가 전부고, 그 위를 어떤 색의 물감으로 칠할지는 아직 명료하게 대답하기 쉽지 않아요.
비슷한 고민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 곡 골라봤어요. 일전에 〈153cm, 플래슈즈〉라는 노래를 소개해 드렸었는데요. 이번에도 가을방학의 노래에요. 1집 앨범 《가을방학》의 첫 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이 노래의 화자는 누군가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면 대개 오렌지색이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제 몫의 명찰이 없는’,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어딘가’에 있는 색을 좋아한대요.
철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꼭 이름 있는 색깔만 좋아하란 법 없죠. 뭐 할거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 할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색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안다면, 늦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급하지 않게 붓을 움직여 봐요. 이 색 저 색 다 칠하다 보며 쌓인 경험들은 가산혼합이 되어서, 누구보다 빛나는 색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자, 천천히 대답해도 좋아요. 무슨 색깔 좋아하세요?
“때로는 섞여 엉망진창 팔레트같아. 그래도 무지개다리 속 날 위한 한자리….” 가을방학,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中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