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재미는 없는 얘기인데요, 제가 고등학교 때 일이에요. 노스페이스 패딩 아시죠? 그게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엄청 유행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예쁜 옷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아무튼, 친구들은 너도나도 엄마를 졸라서 패딩을 얻어냈어요. 저도 그 패딩을 갖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조를 순 없었어요. 집안 형편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집근처 아파트단지를 지나가는데, 벼룩시장이 열렸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낡은 패딩 하나가 제 시선을 빼앗았어요. 패딩에 노스페이스 로고가 새겨져있었죠. 가격은 무려 5만원. 정품가보다 비교도 안 되게 쌌어요. 저는 뭔가에 홀린 듯 용돈을 털어서 그 패딩을 질러버리고는, 다음날 학교에 위풍당당하게 입고 나갔어요. 그런데…, 뭔가 어색하더라고요. 가슴팍에 로고가 박힌 패딩을 입기만 하면 엄청 멋있어질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느낌도 안 들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어딘가 어정쩡한 느낌인 거 있죠. 결국 저는 그날 그 패딩을 중고나라에서 3만원에 되팔아버렸어요. “그토록 탐을 냈던 값비싼 외투인데 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선우정아의 〈뱁새〉라는 곡의 가사에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에서 비유를 빌려 온 이 곡의 심플한 가사는 듣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네요. 〈뱁새〉가 실린 선우정아의 2번째 정규 앨범 《It’s Okay, Dear》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수작이에요. 여유가 되신다면 앨범채로 들어보시는 것도 추천할게요. “어떻게 입어야 옷을 잘 입는 걸까? 단순히 좋은 옷을 입으면 잘 입는 걸까?”, “그렇다면 좋은 옷은 뭘까? 비싸고 유행하는 옷이 좋은 옷일까?”…. 하하,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개강 사흘째 되는 날 아침,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고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의 단편이었습니다. “이걸 다 갖다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입고 나왔는데, 쥐구멍 찾아 숨고 싶구나.” - 선우정아, 〈뱁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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