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설하는 내 남자친구가 좋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 때 겨울바람이 시려웠던 건지 옆구리가 시려웠던 건지 동기 남학생이 술김에 던진 '사귀자'는 말에 응했었다. 그래, 그건 사랑이 아니었지. 지옥에 가까웠어. 넌 나에게 험한 말을 뱉었고, 욕을 했었으니까. 단지 내가 사랑에 미숙했단 이유로 말야. . 지옥같았던 46일동안의 연애가 끝나고 나니까 진짜 지옥이 찾아오더라고. CC의 후폭풍말야. 나는 이제 막 새내기 티를 벗어낸 21살의 여대생이었어. 그런 나에게 선배들이건, 동기들이건, 이름 모를 전과생이건... 심지어 갓 들어온 후배들까지도! 모욕을 했어. 나에게 대놓고 말 한 적은 없지만 그들의 눈빛은 말보다 더 매섭고 날카로웠어. 그때부터 혼자 밥 먹는거에 익숙해진 것 같아. 맛없더라 ㅎ . 처음엔 자퇴하려고 했어, 근데 부모님이 반대했지. 솔직히 내 스스로도 왜 그러려 했는지 몰랐어. 그래서 1년 동안 휴학했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내겐 많은 변화가 일어났었지. 일단 남자가 미치도록 싫었어. 그리고 공부가 재밌어졌고, 옷 입고, 화장하는 법도 배웠지. . 그래서 니가 이상해보였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혼자 학교를 다니는 날 걱정하고, 넌 지하철도 타지 않으면서 굳이 지하철까지는 데려다줘야겠다고 하고, 매운 음식 못 먹으면서 땀 뻘뻘 흘리며 같이 먹어주는게 말야. 제일 멍청해보였던건 내 전남친이자 니 친구인데, 본인이 사람보는 눈이 없었다면서 전남친 말에 선동되어 날 욕했다는 것이 미안했다고 말한거였어. 그 와중에도 넌 욕설을 섞더라고. . 나한테 고백하는 순간도 되게 찌질해보였어 ㅎ 마스크쓰고 있어서 잘 안들린다니까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찌질해보이면서도 사랑스럽더라고. 그래서 사귄거같아. 사실 연애에 별 욕심은 없었는데, 남들이랑 있을 때와는 다르게, 단 둘이 있을 때는 험한 말 안하더라고. 그게 날 의식하고 하는 행동같아서 가식같으면서도, 배려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어. . 그 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 나랑 있을 때 욕을 썼던 것 같아. 어떤 남자가 골목길에 기대어 담배를 피다가 침을 뱉었는데, 하필 일번가를 거닐던 우리 중 나한테 튄 것 같더라고. 너는 달덩이같이 순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태양같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선 그 남자에게 막 무어라 말했어. 난 당황했지만, 너는 차분히 상대에게 쌍욕을 박았지. 지금은 왜 그랬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런 너의 모습이 충격적이고 이상해서 그랬어. 화내고 시간을 두자고 했던거 말야. . 요즘도 넌 가끔 욕을 해. 나랑 조별과제하는 프리라이더 여자애, 이상하게 나한테 C만 주시는 그 교수님, 집가는 날 붙잡고 5분간 설교한 그 신자들, 그리고 전 남친 그새끼... 넌 니 기분 내키내는대로 욕하는 것 같았지만, 다 나한테 무례하고 기분 나쁜 사람들만 욕했어. 그런 니 모습이 싫었었는데, 이제는 아니란걸 알겠어. 날 사랑하기 때문에 날 보호하려 험한 모습도 가져야 하는 거구나 말야. 그래서 이젠 친구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어. 나는 남자친구가 욕하는 모습이 제일 섹시하다고 말야 ㅋㅋㅋ . 우리 너무 먼 길을 돌아왔지? 지금껏 행복해온 것 이상으로 앞으로 더 사랑하고 행복하자. 500일동안 날 아껴줘서 고마워 사랑해, 병신아.